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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고

by 매일보면 2017. 7. 26.

 책을 사놓고 제때 읽기란 생각보다 꽤 쉽지 않은 일이라서, 언제나 읽지 않은 책들이 책장에 하나씩 쌓이게 된다. 20대, 일본 여류 작가들의 작품에 빠져있던 내가 가장 동경했던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였다. 당시의 기준으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의, 하지만 너무나 차분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캐릭터들을 좋아했고 차분하게  읊조리는 듯한 특유의 기교없는 문체도 좋았다. 쉽게 읽히지만, 어렵게 썼을 문장들. 그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가끔씩 서점에 갈 때면 미처 알지 못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은 한권쯤 꼭 구매하게 된다. 이번에 읽었던 '부드러운 양상추'라는 책 역시 분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그런 연유로  내 집에 들이게 된 책일것이다. 꽤나 오랜시간 책장에 그대로 있었던 같은데, 출근길의 방법이 지하철로 바뀌면서 책읽기 좋은 시간이 생긴 탓에 이 책을 뽑아들고 며칠간의 출근길에 정독을하게 되었다. 


 한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보면서 이전에 받았던 작가 특유의 느낌이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마도 글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독자가 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말이다. 여전히 쉽게 읽히지만, 어렵게 써내려갔을 문장들이 가득했고 독특한 캐릭터는 없었지만,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음식이라고 해야할까, 혹은 식재료라고 해야할까. 그냥 포괄적으로 음식이라고 하자. 이 책은 작가가 생활속에서 접하는 음식들에 대해 작가의 개인적인 사견이 담긴 단편들이 엮여있는 그런 책이다. 포도송이 같다고 해야할까. 보면서 내심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의 음식과 관련해 추억하거나 떠올리는 기억들이 어린시절의 기억이라거나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기억들, 즉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람이 빠질수가 없다. 음식의 속성 자체애 '함께', '같이', '나누는'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급격한 개인화에 따라 혼자 밥을 먹는 '혼밥'이 대세라고도 하지만 그마저도 만드는이와 맛보는이라는 두 영역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니 결국엔 사람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라는 사람과 음식이라는 것을 연결지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역시 사람이 엮여있다. 내가 한 요리를 맛 볼 사람. 그 사람에게 해줄 음식을 고르던 기억, 그 음식에 필요한 재료를 고르던 기억, 그 음식을 만들며 그사람이 좋아할 모습을 떠올렸던 기억, 그 음식을 그 사람과 나누어 먹던 공간, 그 사람과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누었던 대화, 그 음식을 먹고난 뒤 뒷정리를 하던 그 사람과 나의 모습들까지 하나의 음식에도 떠올릴 기억들이 풍성했다. 애써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았던, 하지만 하나씩 기억해보려하면 무엇 하나 걸러내기 아쉬운 그런 느낌의 것들로 가득했다. 

한동안 쉬고 있던 음식 만드는 일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음식에 대해, 그 사람과 엮이는 여러가지 기억들도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밌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일이다. 하나의 음식에 담기는 이야기꺼리들이 풍성해진다는 것이 말이다. 아마도 작가 역시 그러한 것을 알기에 이런 단편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