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고

by 매일보면 2017. 8. 3.

 



메마른 느낌. 너무나 메말랐는데 건조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은 딱 그 느낌이었다. 건조하다는 표현을 붙여버리면 그 순간 그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더 그랬다. 그저 메마른, 딱 그정도의 느낌이지만 그 메마름에도 질릴 정도의 습함이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작가들의 사진을 일부러 더 찾아보지 않는 내가 작가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 작가가 낸 책의 표지들인데 정이현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책장에 오랜시간 꼽혀있는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책의 표지 디자인이다. 몇 년도에 인쇄되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잿빛의 도시에 여자가 우산을 들고 하늘을 나는 일러스트 그림. 책의 타이틀과는 상반되는 컬러에 눈이 갔던 기억이다. 왜 달콤함을 잿빛으로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책을 열었고 책을 읽고 나서야 의미를 깨달았고 그 책이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음을 한참 뒤어에서야 알았다. 책이 먼저인지, 드라마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아주 오랜 뒤에서야 책을 봤기 때문이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는 책 역시 달콤한 나의 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다. 표지는 참 상냥한 파스텔 톤의 반듯한 건물의 그림. 표지를 보자마자 '아, 다시 그런 식의 전개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이 참 정직하다. 아니, 충실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충실하게 책이 담고있는 다양한 단편들을 관통하며 하나로 엮어주는 적절한 말이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는 말. 상냥한 표정을 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라는 작가의 말을 충실하게도 담아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상냥한 표정을 상처를 주고받는 감정은 아니었다. 상냥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메마른 느낌이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메마름에 습기가 있었다. 겉으로만 메말랐다고 할 뿐, 그 내면에는 진득하다못해 지칠듯한 습기가 느껴졌다. 그것을 작가는 상냥한 폭력이라 칭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독히도 메마른 감정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음에도 건조하다는 표현을 붙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표현을 붙이기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들이기 떄문이었다. 즉, 관심을 갖지 않으려해도 누구나 겪거나, 겪어내야만 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무더운 7월에 냉방이 잘되는 지하철의 출근길에 진득하게 습하고 메마르고 건조한 모습들이 다발로 엮인 이 책을 보며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지하철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향해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을 시작한 나역시도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상냥한 표정의 누군가 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