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사람과 같이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각각의 책마다 입 안에서 읽혀지는 음이 다르다. 글에 빨려들어가 읽고있노라면, 어느샌가 글에 등장하는 저마다의 등장인물들에 나도 모르게 빙의해 각 인물들의 대화체를 내 임의대로 부여해 실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읽게 되기 마련이다. 글의 전체적인 느낌이 어둡거나 잔인하다거나, 우울하고 음울한 톤이라면 글을 읽으면서 점차 지쳐가는 느낌이고, 반대로 밝고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이라면 생기가 도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느낌은 따뜻함이었다. 소설임에 분명하지만 황선미 라는 작가의 어린시절에 극 중에 등장하는 풍경들이 한조각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구체적인 묘사와 인물들의 설정 등을 보며 작가가 글을 쓸 때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써내려가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책을 보고 주인공 강노인을 통해 평생을 진실이라 믿어왔던 기억이 오해와 착각으로 굳어져버린, 이른 바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알게되고, 이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한 개인의 삶의 변화들에 대해 참 따뜻하고 예쁜 감성으로 담아냈다. 무거운 메시지가 아니지만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무렵,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부분과도 맞닿아있던 이야기였기에 더 각별히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도 섣불리 판단하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스스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훗날 다시 꺼내어 보았을 때, 혹은 우연한 계기로 인해 진실이 아님임을 알게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로인해 상처를 주었을 누군가에 대한 미암함과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다시 속으로 삭히고야 말았던 기어글도 떠올랐다. 글을 통해 현실에서 잠시 생각하지만 금새 잊혀지고야 마는 한 장면들을 회상하게 된다는 것은 머리에, 마음에. 그 일들을 새길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확률을 높일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 매력적이다.
단, 책을 읽은지는 벌써 석 달이나 지나가건만 이제서야 포스팅을 올리는 게으름은 좀 고칠 필요가 있겠다.